제니 조




Critical Essay for In-Between: Through the Eyes of the Others, 2011, Jan Van Woensel


서울에서 태어난 제니조는 2008년 뉴욕대 미대(Steinhardt School of Art and Art Professions)를 졸업하고 이 곳에서 활동을 시작한 전도유망한 작가이다.
최근에는 스타일과 주제, 그 리고 개념에 있어서 미흡하지만 흥미롭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번 두산갤러리 뉴욕 전시에서 주제에 충실하며 작업방식에 있어서도 일관성있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In-Between; Through the Eyes of the Others”은 2009년 첫 개인전의 연장선 상에서 회화와 사진부조를 통한 시각과 지각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이 에세이는 제니조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사색과 기억들, 그리고 지식의 인용과 사회철학적 산책이 담긴 비평적 글을 제공할 것이다.

In-Between

어떠한 경험적 인식도 절대적이거나 보편적이 아니며 그럴수도 없다. 현실과 이에 대한 인식은 즉각적인 관찰의 과정과 해석, 개인화가 동시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는 일시적 시간과 공간을 맴도는 개별 주체들이며 따라서 우리가 존재해 있는 환경과 사건들을 주관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우리의 모든 경험들은 각각의 장소와 시간에 따라 그 자체로서 주관적으로 인식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마도 더 확실할 것이다. 의식적 경험으로는 본질적인 것을 인식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대상에 대한 객관적 기록(있는 그대로의 세계)으로부터 주관화(우리가 보는 세계)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제니조를 매료시킨다.

역사를 통하여 볼 때 예술가들은 사실에 기반을 둔 실제와, 해석/재현이라는 개인적 실재의 사이, 즉 비영구적이며 일시적인 공간에 많은 흥미를 가져왔다. 카메라가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도구가 될수록, 극도로 객관적이고 노력이 필요 없어 보이는 사진 기록에 대한 부분적인 반발로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단 하나의 정지된 이미지가 피사체의 본질을 해석해 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시간의 흐름과 순간적인 빛의 변화를 생생하게 묘사해냈다. 게다가 이 획기적인 화가들은 어떤 면에 있어서 사진은 피사체를 언제나 유동적인 현 세계의 관계와 분리시키고 추방시키기 때문에 진공의 죽은 공간에 사로잡힌 포로라고까지 언급하였다.

대략 20년이 지난 후 활동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던 한 예술가 집단은 그들이 선호하는 주제에 대하여 영속적인 요소를 가진 외양과 상관성있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입체주의 작가들은 회화와 조각, 그리고 판화에서 그들의 주제를 해부하고 분석하고 재구성했다. 이 작가들은 필연적으로 복잡하고 추상화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는 다시점을 가지고 그들의 뮤즈를 묘사하는 것을 선호하면서 모든 전통적인 방식의 시점들을 던져버렸다. 인상주의와 입체주의 두 작가 그룹은 평행적이고 지역적이며, 문화적 혁명으로서의 자극을 받은 예술적 방법론을 통하여 문자 그대로 그들의 지각 심리학을 외면화하고 표출해 내었다. 제니조는 이 예술적인 인식 혹은 내면화된 재현에 질문하는 전통을 따른다.

Architecture of Deception

아마도 부적절한 진술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제니 조의 작품을 흥미롭고 내적이며 건축학적인 기만행위로 생각한다. 명확히 말해 그녀의 작품맥락 안에서 나의 건축에 대한 언급은 단지 건물을 디자인하고 세우는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작품에서 산발적이지만 되풀이되는 모든 다양한 심리학적인 암시와 주저함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작가는 텍사스주의 휴스턴에 있는 부모님의 새 집을 반복적으로 그렸다. 그는 드로잉, 스케치, 그리고 사진과 같은 다양한 습작들을 만들어 봄으로써, 불가피하게 생소하고 낯설게 된 장소인 그 집을 관찰과 재현이라는 탐구를 통해 익숙해지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의 작품에 표현된 이미지는 처음에는 완벽하게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나 다시 보면 집안 내부의 요소들을 어색하고 속임수를 쓴 것처럼 장난하듯 재배치하였다. 주위의 장소들을 볼 수 없도록 막아놓은 두꺼운 커튼과 하나의 이미지에 두 번에 걸쳐 나타나는 비슷한 곡선을 이루는 계단, 거울이 있는 방, 기이하고 거의 극적이고 영화같은 관점을 지닌 제니 조의 작품들은 분리와 소외의 느낌을 준다.

그 집은 작가의 집이 아니다. 제니 조는 실제 거주자라기 보다는 가끔씩 오는 손님일 뿐이다. 제니는 “휴일에 뉴욕을 떠나서 새로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은 익숙함과 낯섦, 그리고 도시의 미와 교외의 미 사이의 독특한 대조를 창조해 냈다. 각 작품에서 나는 가족의 일원이기 보다는 관찰자로써 그 공간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글을 좀 더 깊이있게 들여다 보면 작가는 거실을 무대로 표현했는데, 이것은 제니 조가 거실을 단지 흥미있고 매력적인 비유로서 보다는 극장과 같은 무대에 대한 비유로서의 언급이었다는 것이 명백해 진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인간들이 지적인 즐거움, 감각적인 욕구, 그리고 마치 자신이 “무대위에 있는 것” 처럼 여기는 성향에 의해 정의된 삶의 부적절함을 드러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실 자신도 모르게 삶을 연기하고 있고 환경은
우리가 미리 만든 무대라는 생각에 관한 많은 글들이 존재한다. 철학자들은 아마도 로마시대 이후부터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현대인의 비자연적인 삶의 조건들을 분석하고 비평해왔고, 예술가들은 되돌릴 수 없는 이 상황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삶이란 것이 얼마나 틀에 박힌 조건에 맞추어져 있는지 알려주는 최근의 가장 놀라운 예는 의심할 것도 없이 찰리 코프만의 영화 시네도키, 뉴욕(2008)에 나온 영화감독 카덴 코타드의 괴로우면서도 즐거운,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필립 세이머 호프만이 연기한 우울한 코타드가 ‘MacArthur ‘genius’ grant’를 수상했을 때, 코타드는 뉴욕 시에 있는 거대한 물류창고를 빌린 후 그 곳에서 새롭고 야망적이며 아직 제목도 지어지지 않은 걸작을 위하여 실물크기의 맨하탄 복제물인 ‘불편한 정직함과 끊임없는 자기반성의 극장 프로젝트”를 서서히 짓기 시작한다. 그 재건축된 도시는 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삶으로부터 배우들이 재창조해낸 장면과 캐릭터로 만들어져 복잡하고 실제적인 삶의 영역으로 변해간다. 허구는 실제를 가지고 불가능하며 궁극적인 게임을 벌이며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비극, 고갈 그리고 총체적인 붕괴로 끝을 맺는다.

Stage

이번 “In-Between:Through Eyes of the Others”전시에서 무대라는 개념이 회화와 사진부조를 통하여 가상적으로 얼마나 잘 재현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가끔씩 그의 집, 그 내부, 그리고 정원의 사진들이 시각적 측면에서 명확히 보여지고 있기는 하지만, Nine Picknicker(2011)와 Three men at a Table(2011) 같은 작품에서는 정신적 측면이 더욱 더 부각되고 있다. 식탁과 풀밭은 정체가 불분명한 임의의 집단을 위한 무대의 역할을 한다. 더욱이 이 두 작품에 심리학적이고 영화적인 감성이 더해지면서 제니 조는 같은 화면 안에 서로 다른 포즈를 짓는 몇 몇의 인물들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표현하고 있다. 이 방식은 입체주의 화가들의 반복에 대한 열정과, 더 최근에 나타난, 혼동과 속임을 만들어내는 린치식의(그리고 카프만식의) 전 형적 방법을 생각나게 한다.

제니 조의 작품을 좀 더 자세히 보면, 비록 비선형적이며 의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영화의 스토리 보드와 닮은 점이 보인다. 영화보다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더 나은  매체가 무엇이 있겠는가? 영화 감독들은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을 잘 섞어 관객을 그들의 현실로부터 잠시 동안 분리시키고, 시간과 사건을 더 감성적으로 (또 는 직관적으로)나타내면서 투사되는 이미지들과 대사를 통해 우리의 감정을 조절한다. 영화에서 이러한 쓰기의 과정과 편집, 그리고 스토리 라인을 각색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한히 존재한다.

제니 조의 작품을 보면, 그가 사진으로 찍은 집들은 작가가 몇 주 동안 장소를 찾아 애쓴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의 사진부조는 부재와 공허함, 그리고 비범한 시점을 창조해내고 후에 영상과 조명작업으로도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독창적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의 작품에 나타나는 등장 인물들은 아마도 배우이거나 엑스트라 혹은 대역들일 것이며, 의심할 여지없이 제니 조의 작품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예술가들이 이탈리아 초현실주의자인 키리코의 회화에 나타난 영화나 연극적 특성에 대해 칭송해 온 만큼이나 신비롭고 내향적이다.

제니 조는 그의 작품에서 별로 힘들이지 않은 듯이 그와 같은 탁월함에 도달한다. 전통적인 회화 스타일에 충실하고, 또 전통적인 시점의 규칙들을 적용하는 작가는 강력한 이미지를 창조해내면서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에 대한 경험과 지식에 도전한다. 작품의 주제는 개인적이지만, 작품의 이미지들은 서로 공유된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우리 개개인의 환경에 대해 친숙하게 다가오는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거실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커플과, 탁자에 둘러 앉은 3명 의 남자, 그리고 푸른 잔디밭 여기저기에 피크닉을 나온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제니 조의 그림에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은 수동적인 움직임이다. 각 작품들의 제목과는 별개로 제니 조는 그 이미지의 고요함과 완전, 그리고 평온으로부터 주위를 흩트러뜨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이렇게 단호하게 각색하는 그의 모습은 작품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Through the Eyes of the Others

제니 조의 전시 주제인 “In-Between”은 모든 예술가들이 종종 자기 작품의 컨텍스트를 만들기 위하여 보여주는 중요한 입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탈출로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작가는 오히려 한 발 물러나 자신의 작품에 대해 간섭하려 한다거나 쉽게 설명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따라서 ”Through the Eyes of the Others”는 전시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새롭게 도전하는 “In-Between”의 시작 단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니 조는 각각의 장소와 시간마다 달라지는 타자들의 시각을 항상 제대로 경험하고 해석해 낼 수 없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태에 있음으로해서 작품은 관객의 주의를 끌고 그들을 내적이고 신비로운 상태로 이끌어가는 임무를 적절히 완수하게 되며 마침내 관객들이 작품에 매혹되고 사로잡히게 되는 순간 더 이상의 설명은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얀 반 운셀(Jan Van Woensel) 은 벨기에의 브셀에 기반을 둔 독립 큐레이터이자, 비평가, 출판인, 그리고 음악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