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조



Artspectrum 2014 at 삼성미술관 리움은
Date: 05.01.14-06.29.14


Artists: 김민애, 박보나, 송호준, 심래정, 이완, 이은실, 장현준, 정희승, 제니조, 천영미

 

Press Release

삼성미술관 리움은 2014년, 리움 개관 10주년을 맞아 아트스펙트럼의 형식을 변화시켰다. 연령, 장르,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2년마다 향후의 성장 가능성이 주목되는 작가들을 선정한다는 대전제는 유지하면서 미술관 소속 큐레이터 뿐만 아니라 동일한 숫자의 외부 선정위원들에게도 작가 추천을 의뢰하였다. 한국미술계의 보다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기 위해 활발히 활동 중인 외부 평론가와 큐레이터를 섭외하고, 리움 큐레이터와 외부 선정위원들이 전체 토론을 통해 변화와 혁신, 창의를 주도하는 젊은 작가 10인을 선정하였다.

2014년 다섯번째로 열리는 아트스펙트럼은 이전 리움에서 전시 경험을 살려 장점을 취하고자 하였다. 그라운드 갤러리와 블랙박스를 포괄하는 기획전시장 전체를 사용하는 규모로 다시 돌아오면서, 규모에 맞는 10인이라는 숫자의 작가가 각자 작업 맥락에 맞는 공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 회화나 조각같은 전통적인 매체 뿐 아니라 사진,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장르를 가로지르는 10인 작가들의 작품은 한국현대미술의 다면성을 보여 준다. 개인에게 가장 가까운 부모와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해서 전세계적 정치경제 시스템까지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이들이 서로의 관심사를 좇는 이 전시가 동시대 한국미술의 현황을 보여 주기를 바랐다.

격년으로 열리는 신진작가 전시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면서도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게 새로운 상황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에 다양한 갤러리와 대안공간 전시 경험을 쌓은 작가들이라도 미술관 전시의 제도적 형식에 맞추어 일하면서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미술관 전시가 스스로를 개발해가는 젊은 작가들에게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더 발전해 나아가기 위한 변화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앞으로 이어지는 아트스펙트럼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새롭게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김민애는 건축물의 간과된 공간과 연결된 무용한 구조물을 만들어 제도의 틀과 시스템을 벗어난 사각지대를 환기시키는 일련의 장소특정적 작업을 선보여 왔다. 층간 이동을 돕는 에스컬레이터의 카펫이 늘어나 전시장을 가로질러 벽을 타고 천장에 오르는 신작은, 가벽을 활용한 또 다른 작업과 만나 기존 건축공간을 일그러뜨리며 공간의 구조 자체에 의문을 품게 한다. 실제로 기능하는 상행 에스컬레이터와 유사한 하행 에스컬레이터의 입구는 기존 전시장에 익숙한 사람들마저 혼란시키는 가짜이다. 이런 작품은 미술관 공간과 그 속의 유용한 구조들을 재고하여 공간과 인식의 기존틀을 다시 보게 한다.

박보나는 사회적 상황을 미술적 상황에 대입시키면서, 기존의 구조를 유희적으로 전복하는 작업을 해왔다. 신작에서는 탭댄스 신발을 신은 전시장 가이드가 원래의 역할을 수행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가이드는 작품을 지키고 관객을 안내하는 배경같은 존재에서 벗어나, 작품의 일부로서 탭댄스 신발의 소리와 함께 전시의 리듬을 바꾸는 역할을 하게 된다. 미술의 구조를 드러내는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오디션이라는 제도 안에서 피로하게 계속 맴돌아야 하는 퍼포머들의 인터뷰와 오디션의 재연을 보여주는 비디오로 이어진다. 이 영상은 심사와 수상의 구조가 반복되는 미술의 구조에 대한 은유로서 제시된다.

개인의 힘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한 송호준은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인공위성 발사라는 성취는 국가가 과학기술의 생산과 유통을 통제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애국보훈의 미래지향적 신화로 직결되고, 그 사이에서 인공위성을 둘러싼 기술의 공유와 참여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들은 묻혀 버린다. 인공위성을 비롯한 첨단기술은 이미 현대인의 일상 속에 큰 역할을 하지만, 원래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목적으로 개발되었기 가까이 알고 다가가기는 어렵다. 첨단기술과 산업의 이면을 보여주는 전시장 공간에서 관객들은 과학과 예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심래정의 영상작품은 작가가 직접 그린 손 그림에서 시작된다. 흰 종이에 검정 잉크로 그린 원화를 스캔하는 수공적이고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 영상은 흑백의 강렬한 이미지로 드러난다. 작가는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주변에 존재하는 일상적 존재처럼 다루는데, 이는 작가가 부딪쳐 온 삶과 죽음의 경험들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극성을 더한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삶의 공포와 불안 속에 홀로 밤하늘을 날고 있지만 이 스산한 세계는 결코 암울하지만은 않다. 다른 상황의 이야기들을 이끌던 세 화면이 서로 연결되는 결말에서 관객들은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완은 학부 졸업 이후 꾸준히 사회시스템과 개인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활동을 해 왔다. 생산수단과 노동력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2013년 시작된 <메이드 인>시리즈에서 전세계의 생산현지에서 펼쳐지는 작가의 수행적인 활동으로 연결된다. "한끼의 아침식사"에서 비롯된 이 시리즈는 평범한 일상이 전지구적인 정치경제 상황으로 얽혀 있으며, 특히 세계화 시대 아시아지역의 근대사와 산업화까지 거슬러올라가는 배경을 읽을 수 있다는 구조주의적 화두를 탐구한다. 직접 한 나라의 산업화과정을 재연하는 작가는 개인의 삶이 세계와 연결되는 지점을 보여줌으로써 일상에 가려진 구조를 조명한다.

성과 욕망, 배설 등 금기시 되는 행위와 정서를 적나라하게 그린 이은실의 그림은 사회와 예술의 고루한 가치에 도전한다. 네 폭으로 이루어진 신작은 체면과 명분이라는 겉모습 속에 크고 작은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일반적인 삶을 가옥의 이미지와 그것이 해체되어가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풍경 속에는 동물들의 교미 장면이 숨어 있다. 첫 화면에는 풍경에 파묻혀 드러나지 않던 교미의 도상이 마지막 화면에서는 강렬하게 두드러지는데, 완전히 와해되어 속이 드러난 가옥 앞에서 펼쳐지는 동물들의 행위는 금기와 허울을 벗어난 본연의 우리의 모습을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장현준에게 몸은 인간 모든 것의 시작이다. 인간은 몸으로 환경과 상황을 예측, 판단, 선택하고 즉흥의 과정과 결과로서의 삶을 실천한다.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건축을 행위로 인식하고, 건축가인 부친께 자신이 전시장에서 체류할 수 있도록 공간의 설계를 제안했다. 부친의 설계라는 안무적 행위가 요구하는 건축적 공간의 설계와 시공과 체류의 수행을, 퍼포머인 작가를 비롯하여 영상제작자 및 다른 참여자들이 즉흥적으로 겪으며 서로를 짚어 내고 가시화하는 전시상황에 도달한다. 이 작업은 전시기간 중 퍼포먼스가 추후 기록과 영상으로 완성되는 진행형의 작품을 포함한다.

정희승의 작품은 이전작업의 정물사진들에서 유래한 것으로 차갑고 거리감 있는 현대사진의 즉물적 방식을 따르면서도 시간이 축적된 삶의 흔적과 유령처럼 사람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공간의 정취를 담아 내었다. 바로 우리 눈앞에 있고 열린 구조를 유지하지만 그 내용을 읽을 수 없는 '회전문이 있는 방'처럼 작가의 사진은 또렷한 소재가 있음에도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기 어렵다. 충실한 재현적 매체로 인식되어온 사진의 한계에 주목하고 그것을 매체의 본질로 인식하는 정희승의 사진은 정연한 조형성을 바탕으로 시처럼 간명하게 정서적 침묵을 시각화하고 있다.

제니조의 그림들은 서구회화의 전통에 따른 충실한 재현으로 관객을 잡아 끌지만 그 시각의 대상인 인물과 공간은 작가에게 그리 중요치 않다. 그보다는 우리 눈의 시각적 인식과 인지의 과정을 재구성해내고 그를 통해 다층적 의미를 발생시키는 통합자로서 화폭을 만드는데 우선순위가 있다. 시대 착오적으로 보일 수 있는 구상 회화 작업은 조형과 시각인지 차원에서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관심사를 포괄해내는 개념적 장으로 포섭된다. 작가의 손으로 그려진 완벽한 하나의 세계에 들어서는 관객들은 원래 종교화에서 비롯된 삼면화의 정교한 구성 속에서 회화의 21세기적 의미를 다시 찾게 된다.

천영미의 작업은 연약하지만 섬세한 자아의 끊임없이 살아숨쉬는 서정적 형식미를 가진다. 성경에서 비롯한 <구름기둥 불기둥>은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정다면체와 연결하여 전시장 내에 대형 조각으로 변화시킨 작품으로, 작가 특유의 인식의 전환을 탐구한다. <완벽한 원들>은 기계화되고 획일화된 세상에서 손으로 원을 그린다는 단순한 활동을 드로잉과 입체조각으로 제시하여 인간활동의 특징인 불완전함을 숙고한다. 최선을 다해 완벽한 원을 그리지만 결코 기계로 그린 것처럼 딱 떨어지는 형상이 나올 수 없는 반복적인 노력 속에서 인간의 본원을 찾는 것이다.